법성게(法性偈)1_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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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1-20 12:27 조회7,493회 댓글0건본문
■ 주제 : 법성게法性偈
유투브 「불바보TV」 법성게1_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2021.8.10 방송]
목종스님 법문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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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法性偈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성게는 특히 재를 마치고 봉송이라고 해서 위패하고 혼백을 밖으로 모시고 나갈 때, 항상 법성게를 하면서 안내를 하거든요. 그래서 많이 암송하게 됩니다. 법성게는 아시다시피 의상대사, 신라 스님이시죠. 신라의 의상 스님께서 지으신 겁니다. 의상 스님이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그 당시 화엄경의 2조인 지엄 화상에게 화엄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화엄경을 다 공부하시고 나서 화엄경의 핵심을 210자, 압축해서 7언으로 해서 30구로 지어진 게송으로 만든 겁니다. 전체 화엄경이 80 화엄경이라고 해서 화엄경이 경전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거든요. 그것을 7언 시로서 30구로 압축시켜 놓은 것입니다. 화엄경의 핵심을 그대로 압축시켜 놓은 거죠. 그것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법성게를 또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라고 해서 그림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화엄일승법계도’라고 해서 여러분들, 해인사에 가면 법계도가 있고 그곳을 따라서 법성게를 외우면서 기도하면서 가기도 하죠.
1.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① 법성法性
법성은 법의 성품이라는 뜻이고, 화엄경은, 대부분의 경전이 자성自性을 이야기합니다. 진여자성眞如自性. 왜냐하면, 자성을 깨달아야지만 즉 나의 본성을 깨달아야지만 생사윤회로부터 해탈을 하고 열반으로 가거든요. 해탈과 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여자성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이제 아공我空이라고 합니다. 즉 내 마음과 내 몸이 나라고 여겼던 것이 실체하지 않음을 아는 거예요. 그 다음에 내 마음과 내 몸이 내가 아님을 알면 그러면 내 마음과 내 몸을 통해서 한 내 마음 밖의 것들, 내 마음 밖의 저 대상들, 삼라만상은 무엇이냐? 그것도 역시 내 마음과 내 몸을 통해서 얻어진, 진여자성에 비쳐진, 안・이・비・설・신 감각을 통해서 얻은 감각의 정보들이거든요. 그 기억된 정보들 즉 다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그것을 확연하게 아는 것을 법공法空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과 내 몸의 모습이 나라고 여기는데, 그 나의 본성이 바로 진여자성이고, 내 마음과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삼라만상도 역시 내 마음의 모습이고 그 근본은 바로 진여자성이 나라는 거예요. 그래서 법성法性과 자성自性은 동일한 말입니다. 그 자성을 깨닫는 것을 부처라고 하니,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 하니 그래서 자성을 다른 말로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 법성, 자성, 불성은 동일한 말입니다.
② 원융圓融
원융하다는 말은 둥글고 막힘이 없다는 거에요 어느 곳에도.
법성은 즉 자성은 비출 때 내가 싫어하는 것은 비추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비춘다든지 짧고 길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괴롭고 즐겁고 이런 게 관계없습니다. 내 마음 있는대로 그대로 비추죠. 내 마음을 비추니, 내가 괴롭다 즐겁다 만족한다 불만족한다 이런 것을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원융이에요. 그리고 둥근 거울과 같다고 해서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말을 씁니다. 큰 둥근 거울과 같다, 왜 둥글다는 말을 쓰느냐?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원융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③ 무이상無二相,
둘이 아니다는 뜻이에요. 진여자성인 법성에 비쳐진 내 마음 즉 내 마음은 내 몸도 내 마음이고, 내 마음에 비쳐진 이게 나의 몸이야~ 하는 내 마음이고요, 그 다음에 내 몸을 통해서 보는 모든 대상들, 내 몸도 역시 안・이・비・설・신 다섯가지 감각을 통해서 이게 내 몸이야~ 라고 아는 거잖아요. 저 밖의 대상도 어때요? 안・이・비・설・신의 감각을 통해서 감각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감각정보가 들어온 마음의 모습이 곧 밖의 대상이거든요. 이것들이 각각 다 차별이 되어서 천차만별로 수천 수만 가지들의 사물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진여자성에 비쳐진 마음의 모습이고 그 진여자성은 단 하나입니다. 무이상, 둘이 아니다~ 라는 거죠.
2.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제법은 본래 부동하다~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다~ 이 뜻이에요. 제법, 모든 법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보는 모든 삼라만상, 내 마음과 내 몸을 포함해서 저 밖에 있는 모든 대상들 다 본래 부동,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본래 고요해~ 왜 이 말을 썼을까요? 중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마음을 움직이죠. 마음을 일으켜서 그 마음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몸을 통해서 구해서, 그 다음에 구하게 되면 거기에 대한, 구한 대상이나 조건에 안・이・비・설・신 감각정보를 받아 들여서 아~ 내가 만족해~ 내가 즐거워~ 맛있어~ 좋아해~ 이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마음이 계속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바로 또다시 괴로움이 오고 불만족이 오니 다시 또 만족을 구해야만 합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욕망과 집착이라고 하고, 그러한 마음상태를 산란심이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마음~ 이런 뜻이죠. 그런데 중생들은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밖의 대상이나 조건을 구하게 되고, 수행자는 그것들이 내 마음의 모습임을 알아서 산란한 마음, 움직이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산란한 마음을 하나의 수행의 대상에 집중을 하죠. 그래서 명상의 주제나 수행의 주제를 가지고 다른 마음을 다 내려놓고 거기에 일념으로 일심으로 집중을 하려고 합니다. 그 집중된 상태를 일심 혹은 선정, 이렇게 얘기합니다. 삼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괴로움과 즐거움에서 잠시 사라지죠.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니까 일어나는 것이 거든요. 그래서 구하고요. 그런데 중생들이 생각하는 저 밖의 대상들이 끊임없이 변하니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구하려고 하고, 그것들이 마음의 모습이니 변하지 않는 마음을 구하려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여자성 본성에서 보면 그것들은 본래 변하는 게 아니고 진여자성에 비쳐진 내 마음이 변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 관계가 없고요. 그래서 내가 내 마음과 내 몸을 나로 착각하니 그것들이 변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있지도 않은 겁니다. 그래서 진여자성에서 보면, 실은 본래 고요하다는 거예요. 따로이 고요함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원래부터 고요한 거예요. 내 마음, 내 몸, 내 것들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그 나가 법의 본성이고, 그 본성은 따로이 고요함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법성원융무이상, 법성은 둥굴고 원융하여 두가지 상이 아니고,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존재는(삼라만상)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본래 고요하다. 여러분 스스로 사유하고 성찰하고 그 변하지 않는 본성을 알아차려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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