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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진실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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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6-04 16:04 조회6,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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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불바보TV2019.8.20.일자 불교를 바로보면 삶이 바로 보입니다(2)

목종스님 법문 축약

 

행복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그 불편한 진실을 가감없이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행복이 뭘까요? 우리는 평생을 행복을 찾아서 노력합니다. 평생뿐만이 아니죠. 세세생생 행복을 찾아서 끊임없이 나아갑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중생들은 행복중독자~ 라고요.

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닙니다. 마약에 중독되었거나 알콜 중독된 것은 그래봐야 이 생만 마치면, 다음 생에는 조건이 바뀌니까 어쩌면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해서, 본인이 어리석어진 그 업을 소멸하기 위해서 고통은 받을지언정 그 상태, 중독의 상태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의 중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알아차리지 않으면 벗어날 수가 없습니. 그래서 생을 바꾸고 또 생을 바꾸고 또 생을 바꾸고 오랜 세월동안 생사윤회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우리는 행복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불편한 진실! 한번 볼까요?

행복을 가만히 보십시오. 행복은 즐거움입니다. 즐거움은 만족인 것이고, 만족은 내가 원했던 것을 얻었을 때 느껴지는 느낌이죠. 느껴지는 느낌이고 마음입니다. 그 원했던 것, 이게 뭘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만족-불만족, 즐거움-괴로움이 원인이 아니라, 좋아하고 싫어함에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을 보게 되면, 그 좋아하는 대상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그 즐거움이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고, 만족이 행복을 준다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은 바로 좋아함과 싫어함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조건을 구해서 행복을 얻었다 하더라도, 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이 다시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변해서 또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어느 순간엔가 행복은 사라지고, 다시 불행 혹은 불편함, 불만족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또 다른 좋아하는 대상을 구하게 됩니다또 구하고 나면, 또 변하죠. 왜냐하면 이것이 행복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중생들은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욕망이 곧 나에게 행복을 준다고~

그런데 알고 보면, 욕망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불편함과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주는 원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잘 모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전도몽상, 왜냐하면 거꾸로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오히려 즐거움이나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주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준다고 착각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모습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볼까요?

어떻게 하면 이 수시로 변하는 행복이 아닌 보다 더 바람직한 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행복에 갈 수 있을까요? 근본으로 돌아가면 알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의 모습입니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겠지요. 보통 우리는 싫어하는 마음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준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대상을 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돈벌어서 내게 만족을 준다~ 즐거움을 준다~고 여겨지는 대상들을 구한 거죠. 그러나 그 대상들을 갖다 놓으면, 어느 순간엔가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져버렸고 다시 만족이 사라져버린 거죠. 그래서 결국에는 근원인 싫어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는 좋아하는 마음이 많은 것이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싫어함과 좋아함은 어디서부터 시작을 했나요?

본래 나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대상이~ 조건이~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죠.

단편적인, 끊임없이 변하는 행복이 아닌, 보다 더 완전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내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싫어함을 만들지 말고 더 나은 좋아함을 계속 유지하면 됩니다. 처음부터 싫어함도 있지 않았고 처음부터 좋아함도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반대로 좋아하는 것이 생긴 것이고, 즉 다시 말하면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구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버리는 마음, 욕망을 버리는 삶이 훨씬 더 내게 쉽고 빠르고 완전한 행복을 줄 수 있거든요.

그 욕망을 버리는 삶을 우리는 선행이라고 합니다.

욕망을 적게~ 점점 더 작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선행이고, 욕망을 점점 더 늘려 가는 방법이 바로 악행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행복하고, 악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게 행복의 모습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행복의 근원은 밖의 조건이나 어 떤 대상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백합의 향기가 너무 향기롭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너무 진하다는 걸 알게 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백합을 싫어하죠.

그러나 그 순간뿐이고 다시 지나면, 또 백합을 갖고 싶기도 하고 또 조금 지나면 백합보다는 또 다른 향기있는 꽃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계속 바뀌죠 계속~ 새롭게 계속 구해야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냄새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 시작하면, 단지 백합의 향기에 대한 욕망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코로 느끼는 향기에 대한 욕망 전체가 줄기 시작합니. 그러면 백합이든 라일락이든 아카시아든 어떤 꽃의 향기도 나는 구하려하지 않게 됩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향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게 되고, 그럼 그 분야만큼은 나는 더 싫어함이 없어졌고, 더 만족함이 가득하게 되는 거.

? 싫어함이 생기는 만큼 욕망이 생기고 욕망이 있는 만큼 불만족스럽기 때문이죠. 그러면 냄새에 대한 즉 코로 우리가 원하는 향기에 대한 즐거움을 구하는 그 자체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구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냄새에 대해서는 만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서도 나는 만족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어떤 향기든 어떤 꽃이든 어느 것에도 만족을 하게 되니, 냄새에 대한 즐거움은 훨씬 더 자주, 많이 느끼게 되지요모양과 색깔도 똑같습니다. 어느 색깔이든, 어느 모양이든, 언제라도 만족을 하죠. 그러면 누가 더 만족을 많이 느낄까요? 어느 색깔이든 어느 모양이든 언제든지 구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만족을 많이 느끼죠.

불교는 욕망을 버리는 모습입니다

욕망을 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선행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욕망을 버리는데 즉 싫어함을 갖지 않는 거죠.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비워가는 그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어떤 것이 더 쉽고 완전한 행복의 방법일까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목종스님 법문영상 바로가기] 유투브 검색어 : 불바보TV [불교바로보기회]

https://www.youtube.com/watch?v=Hn7yeCWmY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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