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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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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6-04 16:10 조회7,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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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불바보TV2019.8.27.일자 불교를 바로보면 삶이 바로 보입니다(3)

목종스님 법문 축약

 

우리의 삶과 우리 삶의 목적인 행복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불교는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더 나은 행복이란, 지금의 불만족이나 고통으로부터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족과 즐거움을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고요. 이것들의 즉 불만족과 만족, 고통과 즐거움, 불행과 행복의 근원은 어떠한 조건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 결정한 싫어하고 좋아함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그러면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만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마음의 상태를 줄이고 욕망을 줄이는 것이 훨씬 더 행복을 얻는 쉬운 방법이고 그것이 바로 선행입니다.

불교의 첫 번째 가르침은 지악권선(止惡勸善)입니다. ()을 멈추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행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지금에 내가 처한 괴로움(불편함)에서 벗어나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것, 행복을 얻는 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불편함이나 고통, 싫어함을 느끼게 된 근본 원인은 현재 이전에 내가 행한 욕망의~ 구했던 마음에서 비롯되었거든요그 욕망을 구했던 마음, 욕망을 지나치게 구하는 것이 악행이거든요. 그래서 악행을 하면 할수록 욕망은 극대화되고, 극대화된 그 마음의 흔적이 지금의 나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고 그리고 고통을 일으키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악, 악을 멈추어라~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악을 행하지 말아라~ ? 그러면 더 이상 악의 원인을 만들지 않으니 현재이후의 미래에는 악이 서서히 줄게 되고, 다른 말로 고통이 서서히 줄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통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선행을 해라~.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싶지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내가 만족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실천해가지요.

모든 생명체의 근본목적인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행복의 원인을 지어야 한다.

행복의 원인은 욕망과 집착, 욕망을 버리는 것이고 즉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행복을 얻는 원인이라는 거죠. 그것이 바로 선행입니다그래서 지악권선, 악을 행하지 말고 선행을 해라~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나 불보살님들이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해라~ 이야기합니다그러면 불교의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두 번째는 악행이든 선행이든 근본은 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행위로서 선행과 악행이 있지만, 선행과 악행을 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내 마음에서 시작하죠. 욕망과 집착이 많아서 가져오려고 하면, 그 마음이 극대화되면 악행을 하게 되고, 욕망과 집착이 줄면 줄수록 우리는 선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의 밖의 행위보다도 행위를 하기 이전에 내 마음에 있는 욕망과 집착을 줄이라는 거죠. 즉 싫어하는 마음을 줄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제일 첫 번째는 지악권선,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해라~ 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두 번째는 이 모든 것의 근본은 바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욕망 때문이니,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히 해라~ 즉 번뇌망상을 버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고요하게 하라~ 고 가르쳐 주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욕망과 집착을 버리는 모습이 번뇌망상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번뇌망상을 쉬고 그래서 그 쉬도록 하는 도구가 일념(一念), 하나의 생각으로 만듭니다. 그 생각의 모습이 바로 알아차림일 수 있고, 명상의 주제일 수 있고, 우리나라의 근본 수행에서 비추어 본 화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번뇌망상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합니다고요히 하면 할수록 욕망과 집착이 사라지고, 싫어함이 사라지니 당연히 점점 우리는 자주 더 쉽게 더 오래 더 완전한 행복에 가까이 가는 것이지요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두 번째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즉 가장 완전한 행복, 다시는 괴로움이나 다시는 불만족이나 불행이 없는 완전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지요. 그 완전한 행복의 길을 부처님은 열반이라고 하셨습니다열반(涅槃)이란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Nirvana)’라고 하는데, 니르바나는 더 이상 구하는 마음이 없는 상태,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우리는 매 순간순간 더 나은 즐거움을 구하는데, 더 나은 만족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좋아하는 상태를 구하는 거죠.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하면, 만족을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불만족이고 내 마음속에 있는 싫어함이니, 이것들을 제거하는 방법들을 배우는 거죠. 그것이 번뇌망상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번뇌망상을 버려서 만족을 구하든~ 혹은 만족의 대상을 얻어서 구하든~ 똑같이 또 다른 만족을 구하는 것임에는 다르지 않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하면 더 완전한 행복, 다시는 불편함이나 혹은 싫어함이 없는~ 불행이 없는~ 고통이 없는 완전한 행복에 갈 수 있을까요?

바로 그 완전한 만족을 구하고, 행복을 구하는 주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행복을 구할 때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만족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과연 나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만족일까요~ 나의 만족일까요~ 아니면 나일까요? 반대로 싫어할 때, 불만족스러울 때, 괴로울 때, 불행할 때, 그때는 누구인가요? 그때도 나입니다. 좋아할 때, 만족할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그때도 나이지요. 그러면 싫어할 때와 좋아할 때 그 싫어함을 알고 좋아함을 아는 주인은.. 나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똑같습니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단지 내가 느끼는 느낌 즉 내 마음이 싫어하고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지, 싫어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의 주인은 동일합니다. 전혀 다르지 않지요매순간 싫어한다고 알고, 불편하다고 알고, 괴롭다고 알고 있고, 불행하다고 알고 있고, 그래서 좋아하고 편리함을 구하고, 즐거움을 구하고 만족을 구하고 행복을 구하는 그 주인인 나, 그게 바로 나인줄 알면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뭘까요? 나는 좋아함도 관계가 없고, 싫어함도 전혀 나하고 관계가 없는데.. 똑같은데 왜 관계가 있습니까? 만약에 관계가 있다면 달라야죠. 좋아할 때의 나와 싫어할 때의 나, 나는 달라야죠. 그런데 다르지 않거든요. 같으니~ 즐거움도 관계가 없고 괴로움도 관계가 없고, 불행도 관계가 없고 행복도 관계가 없죠. 그러니 굳이 불행에서 행복을 구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그 나는 본래부터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이든 똑같은 나이고, 그 내 마음에 만족시켜주는 어떤 대상이 있든 없든 나는 똑같습니다.

그 나를 우리가 바로 나인 줄 아는 것,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 주인을 알게 되면, 더 이상의 싫어함에서 즐거움을 구할 필요가 없게 됩니. 그러니 구하는 마음 즉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죠. 필요 없으니 사라지거든. 그때를 우리는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탈이라고 합니다. 해탈은 바로 생사해탈입니. 생노병사의 줄인 말이죠. 생사해탈은 뭘까요? 우리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늙고 죽는 것은 몸이 하는 일입니다. 나의 몸은 성장을 하고 자라서 늙고 병들고 죽음에 가지만, 주인인 나는 그냥 나입니다. 그 몸이 내가 아닌 줄 아니, 몸이 늙고 병들고 죽음에 가더라도 나는 늙고 병들고 죽지 않으니 내게는 생사가 없죠. 몸에는 생사(生死)가 있지만 주인인 내게는 없지요. 태어나면,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늙고 병들고 죽게 됩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늙고 병들고 죽을 몸이 없는데 왜 늙고 병들고 죽겠습니까. 그래서 생사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해탈입니다. 즉 생사의 해탈과 열반의 상태, 그곳에 이르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궁극이고 핵심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인 불교.

불교가 왜 필요할까요? 지금 우리들이 매순간 얻으려는 행복, 불완전한 행복, 일시적인 행복을 보다 더 완전하게~ 보다 더 길게~ 느낄 수 있고, 언젠가는 다시는 불행이나 고통이 없는 가장 완전한 행복, 고통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인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불교는 꼭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학문이나 어떠한 철학이나 어떠한 과학적인 지식도 완전한 행복을 이루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인간의 몸을 나로 여기거나 내 마음을 나로 여겨서 어떻게 하면 더 마음이 나이고 몸이 나인 이 조건하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것인가를 연구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과학문명이 더욱 더 발달한다 해도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고통인 생노병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우리들이 매순간 느끼고 있는 불편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일시적이고 불완전할 뿐이지요이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행복을 완전한 행복으로 만드는 것, 그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불교는 불자들만의~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라면 더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누구나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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