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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法性偈)8_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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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2-02 16:24 조회5,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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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법성게法性偈

유투브 불바보TV법성게8_[2021.10.26 방송]

목종스님 법문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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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까지, 법성게(法性偈)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 여기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초발심시변정각 생사열반상공화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이 말은 초발심할 때가 바로 정각이라는 것입니다. 초발심이란, 처음 부처님 법을 만나서 그래~ 나도 깨달음을 이루자~ 마음을 내는 거예요. 그걸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발심(發心)이라고 하죠. 발보리심의 줄임말입니다. 그럼 발보리심이란 뭐냐? 보리심을 냈다~ 이 말이죠. 보리심(菩提心)이란, 나도 부처님같이 깨달음을 얻어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생사해탈, 열반에 이르도록 나도 빨리 깨달음을 얻고 싶다~ 깨달음을 얻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을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보리심 할 때, ‘초발심시란 보리심을 냈을 때가 바로 정각이라는 뜻이에요. 깨달음이라는 뜻이에요. 부처님 경전에 의하면 초발심하고 나서 그 다음에 정각, 구경열반의 완전한 정각을 이루려고 하면 3아승지겁이 걸린다고 했거든요. 어마어마한 세월이죠. 그런데 어떻게 초발심이 바로 정각일까요? 이것은 그 진여자성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깨닫느냐 하면, 부처님을 보고 배우고 실천해서 결국에는 그 진여자성, 나의 본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어떠한가 하면, 처음에는 내 마음과 내 몸을 나로 여깁니다 모든 중생들이. 그래서 거기에 비쳐진 저 밖의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고, 내 몸을 나로 여기니 생로병사가 있고, 내 마음을 나로 여기니 우리는 즐거움과 괴로움, 불만족과 만족이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에 의하면, 부처님 법을 만나서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떠냐? 그것들이 다 내 마음에 있다는 거죠. 그 내 마음은 내가 있어야지 내 마음입니다. 내가 없는 내 마음은 존재하지 않죠누구나가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변하는 마음과 변하지 않는 나가 있거든요. 그 나가 바로 진짜 나인 거예요. 그래서 참나, 자성, 이렇게 말하죠. 변하지 않으니 진여자성. 그 진여자성의 입장에서 보면 어때요부처님 법 만나기 전이나 부처님 법 만났을 때나 부처님 법을 만나서 보리심을 처음 냈을 때나 그리고 보리심을 내고 나서 3아승지겁동안 끊임없이 실천해서 수행을 한 그 때나 그리고 마지막 구경열반을 얻었을 때나 주인인 나는 똑같죠. 그러니 초발심 했을 때, 그 주인이 똑같으니 그때도 역시 정각이라는 거죠. 그래서 중생이 본래 성불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깨달음을 얻든, 깨달음을 얻지 못하든 누구나가 본성은 다 해탈이고 열반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루어서 부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란 내 마음과 내 몸이 내가 아니고 그 내 마음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이 내 마음의 환영임을 알아가는 겁니다. 그게 깨달음이죠. 그걸 알려고 하면, 그 마음의 주인을 알면 바로 알 수 있거든요. 즉 마음의 주인을 깨닫는 것, 진여자성을 깨닫는 것 그래서 견성성불(見性成佛),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 깨닫는 주인, 그것은 초발심 때나 그 다음에 수행을 1만큼 했을 때나 100만큼 했을 때나 3아승지겁을 마쳤을 때나 주인은 똑같죠.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 초발심 할 때 그때가 바로 정각이다~ 이런 겁니다. 초발심 안 해도 정각이고요, 부처님 법 못 만나도 정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부처님 법을 만나서 초발심을 하고 수행을 하지 않으면 내가 바로 열반과 해탈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죠 중생들이. 그것을 아는 방법, 알아가는 방법이 바로 부처님 법이고, 부처님 법을 만나고 부처님 법을 배워서 실천해서 수행을 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2.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서로 같다는 거예요. 생사와 열반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항상 공존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분명히 생사는 중생들이 생로병사를 하고 윤회의 고통을 겪습니다. 열반은 생사에서 벗어나서 해탈, 열반이거든요. 저 열반의 언덕에~ 깨달음을 얻는 거죠.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 있을까요? 함께 조화롭게 있을까요? 그 주인인 진여자성의 입장에서 보면, 생사[생로병사]에서 생(), 몸이 태어나는 거죠. (), 몸이 시간이 감에 따라 늙어가고 병(), 몸이 가끔씩 가다가 질병이 와서 고통을 느끼는 거죠. (), 죽는 겁니다. 내 몸의 변화를 안신 감각을 통해서 내 몸의 변화되는 모습을 알아가는 거죠. 누가요? 내가. 몸은 변화되었는데 변화되는 것을 아는 주인은 어때요? 항상 그냥 나이죠. 그 변하지 않는 나가 바로 열반이고 해탈이거든요. 왜 해탈일까요? 해탈이란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인데, 생로병사란 변화를 가져와야만 합니다. 몸이 변화하니 생로병사가 있는데, 그 변화하는 것을 아는 나는 열 살 때나 지금이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똑같잖아요. 변하지 않으니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해탈입니다그 다음에 열반입니다. 열반이란 괴로움이 없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괴로움이 있으니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괴로움을 알기 전에도 아는 나는 나요, 괴로움을 아는 나도 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실천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나요 실천해서 결과인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잠시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는 것도 또한 나지요. 나는 똑같다는 거예요. 똑같으니 굳이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구할 필요가 없지요. 똑같은데 왜 구합니까. 그래서 더 이상 구하지 않으니 그것을 니르바나, 열반이라고 하거든요. , 생로병사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으니 해탈이요, 즐거움과 괴로움에 전혀 다르지 않으니 해탈이라는 거죠. 뭐가요? 내 마음의 주인이 바로 해탈이요 내 몸의 주인이 바로 열반이고 해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중생은 마음과 몸을 나로 여기니 생로병사가 있다고 착각을 하고 그 주인공을 아는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은 어때요? 본래 나는 전혀 변하지 않으니, 마음과 몸의 변화일 뿐 나는 변하지 않으니 해탈이고 열반인 거예요. 그래서 중생도 해탈열반이 함께 있고 부처도 해탈열반이 함께 있고 생사와 열반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몸과 마음을 나로 여기니 열반해탈을 모르고, 부처는 열반해탈을 압니다. 그리고 생사란 결국에는 내 마음의 변화임을 그대로 알고 있죠. 그래서 생사열반상공화입니다. 중생은 진여자성인 나를 모르고 마음과 몸을 나로 여겨서 생로병사가 있고 즐거움과 고통이 있다고 여기죠. 그래서 생사윤회고()가 있고, 부처는 마음과 몸이 내가 아님을 알고 그 주인이 나임을 여실하게 아니, 마음의 변화요 몸의 변화이지 나는 전혀 변하지 않음을 알죠. 그래서 생사윤회가 생사윤회가 아니고 열반임을, 항상 열반임을 알고 있는 거예요.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초발심시변정각, 초발심 했을 때 그 때가 바로 정각을 이룬 때요

생사열반상공화, 생사와 열반은 항상 서로 함께 한다. 

 

*불바보TV [법성게8] 바로가기

https://youtu.be/eXJhrLaI0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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