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法性偈)11_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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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1-11 17:26 조회3,870회 댓글0건본문
유투브 「불바보TV」 법성게11_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2021.11.30방송]
목종스님 법문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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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성게(法性偈)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허공에 중생을 위해 가득합니다. 허공이라는 말은 매 순간 순간 우리의 삶에 보배비, 보배비가 뭘까요? 바로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 해탈・열반에 이르는 그 보배비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자 이게 왜 그럴까요?
우리의 눈에는 분명히 욕망과 집착과 미움과 증오와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있죠. 전쟁이 일어나고 기아가 일어나고 생로병사가 만연하고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고해(苦海)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는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배비가 허공에 가득하다고 했을까요?
깨달음의 본성에서 보면, 자, 내가 욕심을 냈습니다. 욕심을 냈다는 것은 마음에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그 마음을 몸으로 실천해서 욕심을 표현했습니다. 말하거나 행위로 표현했죠. 그리고는 더 나아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내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얻어서 기쁘기도 하고 실패해서 절망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이게 중생들의 모습이죠. 매 순간이. 그런데 항상 내 마음과 내 몸에 대한 행위와 그 다음에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들이 항상 있거든요. 눈으로 보는 것도, 눈으로 본다는 것은 뭘까요? 대상이 밖에 있다고 여기고 그것이 눈을 통해서 시각정보가 내 마음에 전달을 합니다. 그러면 그 정보를 누가 읽어냅니까? 내가 읽어내죠.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매 순간순간 안・이・비・설・신 이 다섯가지 감각을 통해서 감각의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읽어내고 그리고 분별하고 그리고 선택하고 그리고 구하든지 버리든지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 모든 행위에 누가 있습니까? 주인인 내가 있죠. 이 이치를 안다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그 보배가 매 순간순간 있는 거죠. 부처님의 경전에만 있거나 혹은 사찰에만 있거나 스승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죠. 저 극락세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매 순간순간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그 기회와 조건들이 항상 가득한 거예요. 그런데 중생들은 알지 못하죠. 그래서 우보익생만허공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것을 중생들의 근기따라 팔만사천법문을 설해서 알려주셨거든요. 그런데 이 똑같은 환경을, 똑같은 조건을 맞이해서 어떤 사람은 욕심을 버리는 이익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때요? 그보다 더 나아가서 마음의 모습이 곧 밖의 모습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수행의 모습을 짓죠. 어떤 사람은 지혜있는, 지혜인은 어때요? 바로 진여자성을 깨닫게 되죠. 즉, 중생들이 자신의 근기에 따라서 이익을 얻는다는 거예요. 똑같은 과정인데..
부처님도 똑같은 과정을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설했거든요.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처님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만큼만 얻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수기득이익이다~ 근기따라 이익을 얻는 거죠. 지혜로운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실천해서 순간순간이 이 모든 것의 주인인 진여자성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해탈・열반을 이루게 되고, 그보다 덜 지혜로운 사람은, 근기가 낮은 사람은 공덕을 열심히 지어서, 왜? 공덕을 지어야 만이 내가 원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얻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공덕만큼만 얻습니다. 중생들은 자신이 지은 공덕만큼만 이 삶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욕심을 버리고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해서 공덕을 지어라~ 라고 가르쳐 준거죠. 더 나아가서는 중생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어때요?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들 백년을 못 넘기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백 년만 되면 내가 모아놓았던 모든 행복의 조건과 즐거움들, 하루아침에 쓸모가 없게 되죠. 그러니 이왕이면 내가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하잖아요. 그러니까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 이왕이면 공덕을 많이 지어서 저 신들의 세계나 천상계에 환생하면 오래오래 살 수 있거든요. 또 그만큼 즐거움도 많아지고요. 선행이 많고 공덕이 많으니 당연히 즐거움이 많겠죠.
그러면 불국토佛國土는 뭘까요?
그래도 그들도 역시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수명이 있어서 늙고 병들고 죽게 되거든요. 그런데 불국토에 가면 다시는 늙고 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그 자비원력에 의해서 자신이 지은 공덕과 원력으로 그곳에 오는 모든 중생들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원하는 즐거움과 원하는 행복을 다 얻을 수 있거든요. 수명도 원하는 만큼 무한히 살 수 있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불국토에 환생하기를 발원하는 거예요. 지극하게 불보살님께 귀의해서 발원하죠. 그래서 불국토에 환생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것, 최종 목적지는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더 이상의 즐거움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신들의 세계이든, 불국토의 세계이든 내가 필요하니까 신들의 세계에서 내가 지은 공덕에 따라서 즐거움과 행복을 더 많이 많이 더 오래 얻을 수 있고요, 불국토는 내가 지은 공덕에 따라 더 추가해서 부처님의 원력의 공덕이 합쳐져서 그것을 가피라고 하거든요. 합쳐져서 내가 원하는 즐거움과 행복을 더 오래 오래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말은 내가 원하는 행복을 계속 얻으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 얻을 필요가 없을 때, 더 이상 구하지 않을 때가 가장 완전한 즐거움과 행복의 상태죠. 즉, 해탈・열반을 말하는 겁니다.
그 해탈・열반이 어디에 있느냐? 지금 내 마음과 내 몸과 내 행위를 통해서 하는 그 모든 것을 아는 주인,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열반이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말씀드린 것처럼, 매 순간 내가 마음이 변화될 때마다 내가 뭔가 원할 때마다 내 행위를 할 때마다 내 감각을 통해 감각의 정보를 알 때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도 그것을 욕망과 집착으로 대상으로 삼아서 끊임없이 구하다가 결국 늙고 병들고 죽음으로 인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조건을 만나게 되고, 죽고 나서는 자신이 지은 그런 업식으로 인해서, 죄로 인해서, 악업으로 인해서 오히려 더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의 세계로 가지요. 똑같은 삶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중생수기득이익 즉, 중생들이 근기에 따라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면,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보배의 비, 중생 위해 허공에 가득하니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은 근기 따라 이익을 얻네.
여러분, 잘 아셨지요?
지금 이 순간에 나는 해탈・열반의 보배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욕망과 집착에 의해서 미래에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로 갈 수 있는 그 조건을 만들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불바보TV 바로가기> https://youtu.be/bdMggQEQy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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