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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法性偈)15_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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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10-11 15:39 조회3,3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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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불바보TV법성게15_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2022.1.25방송]

목종스님 법문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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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성게 마지막 시간으로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 법을 전해주는 것이 가장 큰 선행이고 가장 큰 공덕입니다.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은 다함, 이런 뜻이죠. 마침내. 는 앉다는 거예요. 실제實際, 진실된 진리 즉 실제로 있는 진리, 이런 뜻입니다. 중도상中道床, 마침내 실제로 존재하는, 있는~ 이 실제라는 말을 쓰게 된 동기는 그렇습니다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여자성에 비쳐진, 실제 존재하지 않는 마음의 허상입니다. 그러나 그 허상을 보고 듣고 아는 나는 항상 실재實在합니다. 실제로 있잖아요. 실재라는 말을 중생들은 착각해서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혹은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 진여자성에 비쳐진 감각의 정보요 마음의 허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아는 나는 어때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전생도 현생도 내생도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죠. 그래서 진여眞如라고 하고 다른 말로 실재實在, 이렇게 쓴 겁니다. 진실眞實이라고도 하는 거죠. 여실如實, 여실지견如實知見 그래서 변하지 않는 실제로 항상 있는 지혜의 모습 그래서 여실지견, 다른 말로 평상심平常心이라고 합니다. 항상 평등한 마음, 이런 뜻이죠. 그래서 궁좌실제중도상, 마침내 항상 존재하는 실제로 있는 중도의 자리에 앉으니, 이런 뜻이에요. 중도를 깨달으니, 이런 뜻이죠. , 중도中道는 또 뭘까요중도란 보통 우리 불자님들이 아시기를 유와 무, 고와 락, 즉 제일 우리가 중도에서 비유를 많이 쓰는 것이 고행도 하지 말고 쾌락도 추구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쾌락을 추구하셨습니다. 그 쾌락이란 바로 안신의 감각을 통해서 감각을 구하는 거죠. 감각에 대한 즐거움을 구하는 겁니다. 그걸 쾌락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이 출가를 하셔서는 그 감각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고행을 하셨습니다. 고행이란 뭐예요? 신을 통해서 내가 즐거워하는 정보가 아니라 그것에서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정보가 들어와도 감내하는 거죠. 전에는 안신을 통해서 즐거움을 구했다면 출가수행자는 안신을 통해서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반대로 어때요? 괴로움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괴로움을 구하지도 말고 즐거움을 구하지도 마라~ 그것이 바로 참된 수행이라고 하신 거예요. 부처님은 대상을 통해서 욕망과 집착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려는 거나 욕망을 버리고 고행을 해서 즐거움과 행복을 얻으려는 거나 둘 다 맞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중도는 뭐냐? 그것이 다 누구의 즐거움이에요? 나의 즐거움이에요. 그러면 나의 즐거움이란 뭘까요? 바로 나라는 바탕에 내 마음이 원하는 만족인 거예요. 그런데 마음은 만족해도 내 마음이고 불만족도 내 마음이고 고통도 내 마음이고 즐거움도 내 마음이에요. 나는 변하지 않고 마음만 불만족에서 만족으로,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바뀔 뿐인 거예요. 주인인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이 주인인 나를 깨달으면,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음이 원하는 저 대상, 감각의 대상들을 구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이 욕망과 집착의 근원임을 알아서 욕망과 집착을 버릴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 본래 나하고는 관계가 없잖아요. 나는 전혀 변하지 않으니.. 항상 그 자리에 있잖아요. 그래서 그 마음의 주인인 진여자성을 깨달아라~ 그러면 어느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참된 해탈과 열반은 바로 진여자성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를 얘기하셨고, 부처님께서도 내가 중도를 깨달았다~ 얘기하신 거예요. , 우리의 본성인 진여자성을 깨달은 거죠.

 

구래부동명위불 舊來不動名爲佛

예로부터 부동, 변함없이 그 이름이 부처라네~ 다른 말로 하면, 예로부터 변함없는 그것이 바로 부처라네~ 이런 의미입니다. 그 자성을 볼까요? 변하지 않죠. 우리는 전생과 혹은 현생, 내생, 이거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보면 압니다. 어제도 나이고 오늘도 나입니다. 내일도 나죠. 십년 전에도 나이고 지금도 나이고 십년 후에도 나입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변했고요, 내 몸도 변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내 몸을 통해서 구해서 내 것들도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그런데 주인인 나는 어때요? 내 것의 주인인 나와 내 몸의 주인인 나와 내 마음의 주인인 나는 항상 그대로 있죠. 그러니 이번 생도 그렇다면 이번 생에 전혀 변하지 않으니 다음 생도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고 전생도 변하지 않을 것이에요. 전생이란 변하지 않는 나에게 비쳐진 내 마음과 내 마음이 원한 내 몸을 전생이라고 한 것이고요 과거에, 그 다음에 현생은 지금 변하지 않는 나에게 비쳐진 지금의 내 마음 그리고 내 몸, 이게 현생인 거예요. 그리고 내생이란 변하지 않는 나에게 비쳐진, 내가 이 생에서 끊임없이 모아 놓은 내 마음의 경험에 의해서, 업식에 의해서 내 몸을 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내생이 되는 거죠. 나는 변하지 않아요. 나는 변하지 않으니, 변하지 않는 나를 깨닫는 것이 바로 부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상태를 열반이라고 하고요, 왜 열반이라고 할까요? 어느 것도 구할 필요가 없거든요. 욕망과 집착을 그냥 내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마치 태양이 뜨고 나면 불을 켤 필요가 없죠. 그와 같습니다. 그럼 해탈입니다. 마음을 구하려고 하니 구해줄 도구인 몸이 필요했는데, 마음을 구하는 것이 필요 없어졌으니까 구할 도구인 몸이 필요 없어졌잖아요. 그러니까 생로병사를 받지 않죠.

이제까지 법성게를 15회에 걸쳐서 한번 다 함께 보았습니다. 법성게는 법성, 법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여자성이 나에게 비쳐진 내 마음의 모습임을 이야기할 때를 법이라고 했죠. 그 모든 것의 근본 성품, 바로 나예요. 내가 있어야 내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법성法性이라고 합니다. 그 법성이 바로 이므로 자성自性이라고 하고요 그 자성을 깨달은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하니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성法性, 자성, 불성은 동일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변하지 않으니 진여자성眞如自性이라고 하죠. 그 법성의 상태가 해탈이고 열반인 거죠. 이 법성게란 모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은, 법성게는 진여자성에 드러나는 성품들을 설명해 놓은 거예요. 또 다른 이야기는 화엄경華嚴經의 핵심을 이야기했다고 얘기하시거든요. 즉 화엄경이라는 말이 바로 진여자성에 비쳐진 그 부처님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모습, 그것을 중생들의 눈에 맞게 설명해 놓은 것이 화엄경이예요. 화엄경은 부처님의 진여자성에 비쳐진 부처님의 마음, 어떤 마음일까요? 아주 오랜, 시작함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발원했고 실천했던 그 보살행의 공덕의 마음이 가득하죠. 그 마음이 드러난 모습을 우리 중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은 것이 바로 화엄경이거든요. 그래서 그 화엄경의 근본이 바로 법성이고 그 법성의 그러한 모습들, 특징들을 설명해 놓은 것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감사합니다.

<불바보TV 바로가기> https://youtu.be/p1W6QqFHx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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